조선 상고사 주요 내용 정리
제1편 총론 (역사의 정의, 구사 비판 및 연구 방법론)
1. 역사의 정의와 원칙
• 역사의 정의: 인류 사회의 ‘아(我)’와 ‘비아(非我)’의 투쟁이 시간으로 발전하고 공간으로 확대되는 심적 활동 상태의 기록이다.
• '아'의 조건: 역사적 '아'는 상속성 (시간의 생명 연속)과 보편성 (공간의 영향 파급)의 두 속성이 있어야 한다.
• 승리자와 패망자: 비아를 정복하여 아를 드러내면 승리자가 되어 미래 역사의 생명을 잇고, 비아에 공헌하는 자는 패망자가 되어 과거 역사의 자취만 남긴다.
• 패망의 원인: 정신의 확립(선천적 실질)과 환경의 순응(후천적 형식) 중 하나가 부족하면 패망한다.
2. 조선사 서술의 요건
• 조선 민족을 '아'의 단위로 잡고, 다음 사항들을 서술의 요건으로 삼는다:
◦ 최초 문명의 기원
◦ 역대 강역의 신축(伸縮) 상태
◦ 각 시대 사상의 변천
◦ 민족적 의식의 왕성/쇠퇴 시기
◦ 여진·선비·몽고·흉노 등 동족 분리 후 다시 합치지 못한 의문
◦ 신앙의 추세
◦ 학술·기예 등 천재 발휘 부분
◦ 경제 조직(의·식·주, 농·상·공, 땅 분배, 화폐 제도)의 형편
◦ 인민의 이동, 번식, 인구 변화
◦ 정치 제도의 변천
◦ 북벌 진취 사상의 나아가고 물러선 사실
◦ 각 계급의 압제와 대항 사실
◦ 지방 자치제의 발생 원인과 소멸 결과
◦ 외세 침입에서 받은 손실과 이익
◦ 문화상 창작이 고립적·단편적이 된 원인
3. 조선 구사(舊史)의 문제점 비판
• 역사는 때(時), 곳(地), 사람(人) 세 가지 원소로 구성되나, 구사는 이를 올바르게 기록하지 못했다.
• 지리적 오류: 역사가들이 자기 목적에 따라 땅을 이동시키는 재주를 부려 졸본(卒本)을 성천/영변에, 안시성(安市城)을 용강/안주에 갖다 놓았다.
• 시간적 오류: 《삼국유사》는 불법이 없던 왕검 시대부터 인도의 범어가 가득하고, 유가 김부식은 《삼국사기》에 공자·맹자의 인의를 무시하는 무사의 입에 경전 문구를 넣었다.
• 인물 왜곡: 신라 왕을 인도 찰제리종이라 하거나, 고구려 추모왕을 고신씨의 후손이라 하는 등, 주관적 심리에 맞추어 기록했다.
• 춘추 필법의 폐해: 임금을 높이고 백성을 천대하며 중국을 숭앙하여 민족 자체의 활동을 무시하고 나라까지 비방하였다.
4. 구사(舊史) 종류 및 평가
• 《신지비사》: 단군 때 사관 '신지'가 아닌, 수두 임금의 수좌 '신치(臣智)'들이 노래한 것을 후세에 편집한 것이며, 태종의 분서 때 소실되었다.
• 《삼국사기》/《삼국유사》: 사대주의자 김부식의 저작으로 동·북 부여를 제외하고 발해를 버렸으며, 몽고 침입 이후 독립자존 문헌이 사라지면서 유일하게 전해졌다.
• 한백겸 《동국지리설》: 지리 연구의 실마리를 열었으나, 삼조선의 관계를 몰라 지리 단정에 착오가 있었다.
• 안정복 《동사강목》: 연구의 정밀함은 뛰어나나, 서적 열람 부족 및 공자·주희의 사상에 빠져 기자(箕子)를 중시하는 오류를 범했다.
• 《해동역사》: 지나·일본의 문헌에서 사료를 수집하는 데는 공이 있으나, 민족 대세의 관계를 잃었고 위서를 그대로 신용하는 결점이 있었다.
5. 사료 탐구 및 개조 방법론
• 역사학 발달 장애: 내란·외환과 더불어 국문 발달 지연, 시대별 사회 형식·정신 변화로 인한 역사 사상의 연락 단절이 있었다.
• 고증 방법: 명사 해석 시 이두문(吏讀文)의 음역과 의역을 파악하여 지명 오류를 바로잡고 사료의 의혹을 보충할 수 있다. (예: 압록강=아리수, 말한·변한·진한=삼신 근원).
• 위서 판별: 지나사의 위증은 인(人), 사(事), 이(理)의 세 가지 증거로 판별해야 한다.
• 역사 개조의 핵심: 인과 관계를 밝혀 역사의 계통을 찾고, 고금의 성패와 이해를 냉정하게 따져 시비를 가려야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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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2편 수두 시대
1. 조선족의 기원과 문화 발생지
• 조선족의 분류: 흉노족과 함께 우랄 어족에 속하며, 한족·묘족 등은 지나 어족에 속한다.
• 동래(東來): 조선족은 서방(파미르 고원 혹은 몽고)에서 광명의 본원지를 찾아 동방으로 나와 불함산(백두산) 부근을 **조선(朝鮮, 옛날의 광명)**이라 일컬었다.
• '아리라'와 '부여': 조선 고대 문화는 큰 강들('아리라') 강변에서 발생했으며, **부여(夫餘)**는 농업 발생 이후 조선족이 최초로 개척한 야지(野地, '불')를 의미한다.
2. 단군 왕검의 건국과 제도
• 단군: 조선족의 커다란 공동 신앙으로, '신수두(臣蘇塗)'의 최고 지도자인 **큰 단군(大壇君)**을 뜻한다.
• 왕검: 당시에 유행한 '수두' 미신을 이용하여 태백산 '수두'에 출현, 스스로 상제(上帝)의 화신이라 일컬으며 조선을 건국했다.
• 삼한(三韓) 제도: 중앙 정부는 세 한 (신한: 대왕, 말한/불한: 좌우 부왕)과 다섯 가(加) (돗가, 개가, 소가, 말가, 신가)로 구성되었으며, 윷판은 이 다섯 가의 출진도를 나타낸다.
• 부루의 치수: 단군 왕검이 아들 부루를 보내 하우(夏禹)에게 오행통수(五行通水)의 이치를 가르쳐 홍수를 다스리게 했으며, 이로 인해 지나에 수두교가 전파되었다.
• 기자: 은(殷) 왕족 기자(箕子)는 주(周)가 수두교를 배척하자 조선으로 망명하여 '홍범구주(洪範九疇)'를 연술(演述)했다.
3. 문자 생활
• 이두문: 한자를 가져다가 음자인 이두문을 만들었으며, 이는 조선 고대의 국문으로 약 3천 년 전 제작되었다.
• 창작 원인: 이두문이 불통일하고 불확정한 방식으로 된 것은 정치적 장애 (적국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) 때문이었다.
• 신지(神誌): '신치(臣智)'의 번역이며, 신치(신가)가 우주 창조 신화와 교훈 등을 노래한 것을 문사들이 엮은 것이 《신지비사》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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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3편 삼조선 분립시대
1. 삼조선 개요
• 분립 경위: 단군 왕검 시대 세 한(韓)이 조선을 통치하다가 분립한 것이며, 신조선(개씨), 불조선(기씨), 말조선(한씨 추정)이 되었다.
• 분립 시기: 기원전 4세기경, 지나 전국시대에 불한이 신한을 배반하고 스스로 왕을 칭하면서 분립이 확증되었다.
• 강역: 신조선은 합이빈 부근 (길림·흑룡성), 불조선은 개평현 부근 (요동반도), 말조선은 평양 부근 (압록강 이남)을 차지했다.
2. 열국 분립의 시초 (말조선/가야/신라)
• 말조선의 변천: 말조선은 난리를 피해 남쪽 월지국으로 천도한 후 국호를 **마한(馬韓)**으로 고치고, 왕은 **진왕(辰王)**이라 일컬었다.
• 기준의 망명: 불조선왕 기준(箕準)은 위만에게 왕검성(개평 동북쪽)을 빼앗기고 마한 왕도인 월지국으로 들어가 왕이 되었으나, 오래지 않아 마한 여러 나라에 의해 토멸당했다.
• 남삼한: 마한이 종주국이 되어 신한(진한)과 불한(변한)을 두어 삼의 수를 채웠다.
• 가라(加羅): 변진의 12자치부가 '가라'라 불렸으며, 김수로 6형제가 여섯 가라(신가라, 밈라가라 등)를 건설했다.
• 신라: 진한 6부 중 사량부에서 시작되어, 박·석·김 3성이 공화하는 나라를 만들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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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4편~제12편 (고구려, 백제, 신라의 흥망성쇠 및 대외 전쟁)
1. 초기 삼국시대와 한(漢)의 침략
• 동부여와 고구려: 해부루가 동부여(갈사나)로 동천하고, 해모수의 아들 추모(주몽)가 고구려를 건국했다.
• 대주류왕(대무신왕): 동부여 대소왕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북동부여를 복속시키고 국력을 확장했다.
• 한사군: 한 무제가 위씨조선을 멸망시키고 설치한 한사군(진번, 임둔, 현도, 낙랑)은 실제로 존재했다기보다는 고구려, 남동부여 등을 토멸하려던 가정(假定)적인 구획이었다.
• 백제의 건국: 추모왕의 아들 온조와 비류가 남으로 내려와 백제를 건국하고 마한 왕위를 차지했다.
2. 고구려의 발전과 백제의 강성
• 고구려 '선배' 제도: 태조왕·차대왕 때 창설된 무사단으로, 평시에는 공익에 힘쓰고 전시에는 용맹하게 싸우며 귀천 없이 인재를 배출했다.
• 근구수왕의 서정(西征): 백제 근구수왕은 고국원왕을 전사시키고 평양을 함락했으며, 바다를 건너 지나 대륙에 진출하여 요서·진평 두 군을 설치하고 일본을 속국으로 만들었다.
3. 광개토왕과 장수왕의 정책 변화
• 광개토왕: 요동을 회복하고 백제를 공격했으며, 왜구(倭寇)를 격퇴하여 신라를 구원했다.
• 장수왕의 남진: 북수남진주의(北守南進主義)를 채택하고 평양으로 천도했다.
• 백제 근개루왕의 몰락: 장수왕은 승려 도림의 이간책을 써서 근개루왕이 국력을 낭비하게 만든 후, 백제를 침공하여 근개루왕을 순국시켰다.
• 네 나라 동맹: 장수왕의 남진 정책으로 신라, 백제, 임나가라, 아라가라가 대고구려 공수동맹을 맺었다.
4. 고구려-수(隋) 및 고구려-당(唐) 전쟁
• 수나라 전쟁: 수 양제가 침입하자, 고구려는 청야 전술과 유인책을 사용했다.
◦ 패강 전투: 왕제 건무가 수군 총관 내호아의 양식 운반선을 격파하여 육군을 고립시켰다.
◦ 살수 대첩: 을지문덕이 수의 군사를 살수(청천강)까지 유인하여 궤멸시키는 대승을 거두었다.
• 연개소문의 혁명: 대당(對唐) 강경론을 주장하며 호족들과 대립하다가, 혁명을 일으켜 영류왕과 대신들을 살해하고 **'신크말치'**가 되어 정권과 병권을 독점했다.
• 안시성 싸움: 당 태종이 침입하자, 안시성주 양만춘의 굳건한 방어와 연개소문의 지나 내부 습격(상곡) 전략으로 당 태종을 격파했다.
◦ 당 태종은 이 때 양만춘의 화살에 눈을 맞아, 요동에서 얻은 병으로 사망했다.
• 연개소문의 평가: 연개소문은 봉건세습의 호족 공치제를 타파하고 정권을 집중시킨 정치사상 혁명가였으나, 사대주의 역사가들에 의해 적신(賊臣)으로 폄하되었다.
5. 백제의 멸망과 부흥 운동
• 성충의 건의: 의자왕 초기, 성충은 김춘추의 딸 고타소랑 사망을 복수하려는 신라의 침략을 예측하고, 대야성 공격과 고구려와의 동맹을 건의했다.
• 신라의 이간책: 김유신은 간사한 무당 금화와 백제 대신 임자(任子)를 이용한 이간책을 써서 성충과 윤충 등 충신들을 숙청하게 만들었다.
• 나·당 연합군의 침입: 660년, 태종무열왕(김춘추)의 신라군과 당 소정방의 당군이 침입했다.
• 계백의 순국: 백제 장군 계백은 황산(黃山)에서 5천 결사대로 신라군에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했다.
• 의자왕의 포로: 당 소정방이 백강(기벌포)에서 승리하고 서울 곰나루성을 함락시키자, 의자왕은 포로가 되었다.
• 백제 부흥 운동: 무왕의 조카 부여복신과 자진 등이 의병을 일으켜 웅진성을 포위하는 등 큰 성과를 거두었으나, 왕자 풍왕이 복신을 살해하고, 흑치상지 등이 당에 투항하면서 실패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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