I. 한국 문화유산의 위상 및 남북 분단의 현황
• 문화적 지분율: 대한민국은 아시아와 세계사에서 문화적 지분율이 매우 크며, 통일이 되면 그 힘을 더 발휘할 수 있음.
• 단절된 철도:
◦ 마지막으로 남아 녹슬지 않게 보존된 '철마'가 문화재청에서 보관 중임.
◦ 철도 중단점은 경의선과 경원선 두 군데이며, 경원선의 경우 신탄리역에서 원산까지 131km (용산에서 88km) 구간이 끊어져 있음.
◦ 철도 노선은 1890년대 대한제국 자체 부설 시도가 실패하고, 일제강점기인 1914년 무렵에 개통되었음.
◦ 철길이 생기면서 평안북도의 중심이 의주에서 단둥과 맞닿은 신의주로 바뀌게 되었고, 의주는 잊히고 신의주만 알려지게 됨.
• 개성공단 상황: 공장을 짓고 협력하다가 갑자기 문을 닫아 슬픔과 인명 피해까지 몰고 온 것은 황당무계한 일임.
II. 개성(開城) 지역 문화유산
• 개성 남대문: 단층으로 된 낮은 읍성 도시 성곽으로 둘러싸인 개성의 상징임.
• 만월대(滿月臺):
◦ 고려 왕궁 터이며, 고려 멸망 후 건물은 없어지고 넓은 들판에 달이 뜨는 모습을 즐겼음.
◦ 단원 김홍도가 1785년에 개성에서 62명의 환갑 노인 합동 잔치 장면을 송악산 아래에서 그린 기념비적인 그림이 있음.
◦ 현재 만월대 복원은 문화재 복원의 큰 과제이며, 터 닦기 발굴을 해오다 중단하고 있는 실정임.
• 성균관(成均館): 조선 왕조로 넘어가는 고리가 되었으며, 현재 개성 박물관 및 주변 유물 전시장으로 사용됨.
• 숭양서원(崇陽書院)과 선죽교(善竹橋):
◦ 정몽주 선생을 모신 사당이며, 본래 정몽주 선생이 살던 집 자리에 지어짐.
◦ 바로 옆에 정조대왕이 충절을 기려 써놓은 비각이 있는 선죽교가 있음.
• 한옥 마을: 6.25 동란 당시 최고의 격전지였던 개성에서 이 마을이 보존된 이유는 정전협정이 근처에서 열려 포격을 하지 말자고 했기 때문임.
◦ 한때 통일의 꽃 임수경이 묵었던 집이 여관으로 사용된 적이 있음.
◦ 개성 백반을 놋그릇 30개에 차려 먹는 것이 유명함.
• 태조 왕건릉(王建陵):
◦ 무덤을 새로 단장(개건)했으며, 남한 학자들이 허위 복원이라 비판하나 북측은 복원이 아닌 '개건(改建)' (옛 모습을 찾아 다시 세우겠다는 뜻이 아님)이라고 주장했음.
◦ 개건 과정에서 왕건의 동상이 발견되었는데, 옷을 입혀 같이 묻었던 것임.
◦ 왕건의 얼굴상은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환원되어 불상과 유사한 모습을 보임.
• 공민왕릉(恭愍王陵):
◦ 쌍분(雙墳)으로 되어 있으며, 공민왕이 먼저 죽은 노국대장공주를 위해 자신이 직접 설계함.
◦ 영혼이 오갈 수 있도록 가운데 통로를 연결하여 시공되었음.
◦ 살아서 자기 무덤을 만드는 것(壽陵, 수릉)의 가장 대표적인 예에 해당함.
• 박연폭포(朴淵瀑布):
◦ 개성을 다녀온 사람이 반드시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곳이며, 연못 위에서 폭포가 떨어지기 때문에 '박연'이라고 불림.
◦ 김홍도의 선생인 표암 강세황은 이곳을 현대 수채화 같은 스케치풍으로 그림.
◦ 겸재 정선은 노년기에 드라마틱하게 과장하여 아름다운 조국 강산의 감정을 극대화하는 모습으로 그림.
III. 평양(平壤) 및 기타 유적
• 평양 환영: 남북 정상회담 당시 평양 방문 시 열렬한 환영을 받았음.
• 옥류관 일화: 옥류관 식사 중 김영철 부위원장이 유홍준 교수를 '남측의 300 이야기꾼 중 하나'라고 지칭한 것이 '300 구라'라는 소문으로 와전되기도 함.
• 기왕원(奇汪元)의 시:
◦ 고려시대 기왕원이 부벽루(浮碧樓)에서 대동강 풍광을 보며 지은 시(長城一面 용용수, 大野東도 점점 산)가 있음.
◦ 정지용 시인의 <향수>의 한 구절('넓은 벌 동쪽 끝으로')은 이 시의 '대야동'에서 영감을 얻은 것임.
• 김관호 화가의 작품:
◦ 우리나라 최초 서양화가 고희동 졸업 이듬해(1911년), 평양 출신 김관호가 동경 예술 학교 졸업작품으로 일본 문부성 전람회에서 특선함.
◦ 일제강점기 국민들은 한국인이 일본을 눌렀다는 것에 크게 환호했음 (특선은 과거 알성 급제와 같은 위상).
◦ 특선작은 대동강 변에서 미역 감는 벌거벗은 두 여인(여유)을 그린 것인데, 신문에 사진 게재가 되지 못했음.
• 홍명희 선생의 언어: 벽초 홍명희 선생은 소설 <임꺽정> 연재 중, '실 없는 얘기로 희희낙락 거리는 것'을 뜻하는 순우리말 **'희영수 거리다'**를 찾지 못해 며칠 연재를 중단하기도 했음.
• 단군릉(檀君陵):
◦ 개건(改建)되었으며, 좌우로 고조선 시대 유물의 상징인 선돌과 고인돌을 배치했음.
◦ 용곡리 고인돌 근처에서 메밀꽃이 잡혀있는 시골 풍경을 보며 조국의 일부임을 느낌.
• 메밀꽃 관련 문학 논쟁:
◦ 안내원(김일성대 국어과 출신)은 메밀꽃 관련 작품으로 이효석의 <메밀꽃 필 무렵>을 '반동 작가'의 작품이라며 거부함.
◦ 대신 정서천의 시를 낭송하며, 낭송시(朗誦詩)의 매력을 강조했는데, 북측은 혁명적 열풍 속에서 이 낭송시 전통을 유지하고 있음.
◦ 낭송시를 통해 인간적인 교감과 민족 동질감을 나눌 수 있음.
IV. 고구려 고분 벽화 및 문화재 협력
• 고분 벽화 발견: 고구려 고분 벽화는 350년에서 668년 사이에 왕릉뿐 아니라 귀족들의 무덤 포함 약 95개가 발견됨.
◦ 평양에 60개, 압록강 너머 중국 지안(集安)에 30개가 분포함 (후기 양식이 평양에 많음).
• 진파리 고분 벽화: 유명한 솔나무(솔밭) 그림이 있으며, 평강공주와 온달 장군의 무덤으로 알려진 곳의 벽화임.
• 강서대묘 현무도(玄武圖): 고구려 문화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벽화임.
◦ 현무는 거북과 뱀이 같이 어울려 사랑하려는 찰나를 포착하여 강한 긴장감(텐션)을 보여줌.
• UNESCO 공동 등재:
◦ 중국이 지안에 있는 고분 벽화(무용총, 씨름총 등)를 단독으로 세계 유산 등재 신청하려 하자, 한국이 북한과 협력하여 60점을 **'남한과 중국 내 고구려 고분 벽화'**로 공동 등재시킴.
• 개성 UNESCO 등재:
◦ 유홍준 교수가 문화재청장 재임 시절(북측 대남 담당 비서에게) 개성을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재하겠다고 밝혔고, 3년 만에 성공함.
◦ 선죽교, 숭양서원, 성균관, 한옥 지구, 남대문 등이 등재됨.
• 문화재 보존 협력의 어려움:
◦ 한국은 정전협정(평화협정으로 바뀌지 않음)으로 인해 문화재청장이 북한 문화재 보존국장과 일대일로 직접 만날 수 없는 형식상 전쟁 중 상태임.
◦ 보존 관리를 돕기 위해 돈을 직접 못 주고 유네스코를 통해 지원하며, 한국 문화재 연구소 사람이 가서 보존 처리 작업을 하고 있음.
◦ 문화유산 협력은 경제 협력이 끊어져도 민족 동질성을 회복하는 가치를 이어가고 있음.
V. 묘향산과 금강산 문화유산
• 묘향산(妙香山):
◦ 고난의 행군 시절(1997년)에 방문했으며, 청천강에서 물장구치는 아이들을 보며 향수를 느낌.
◦ 서산대사는 묘향산을 장엄하고도 화려하다(지리산은 장엄, 금강산은 화려)고 평가하며 이곳 청허삼방에서 지냈음.
◦ 보현사(普賢寺): 북한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사찰. 팔각 11층 또는 13층 석탑과 다라니함은 고구려 양식을 계승했음 (남한에서는 월정사에서 볼 수 있는 형식).
◦ 이노대(邀奴臺): 경치가 좋아 사슴이 호랑이를 불러 같이 보자고 했다는 전설이 있는 곳.
• 금강산(金剛山):
◦ 유홍준 교수는 10번 방문했으며, <나의 문화유산답사기> 5권을 금강산으로만 썼음.
◦ 겸재 정선(謙齋 鄭善)의 그림:
▪ 37세에는 지도처럼 그렸고, 환갑 무렵에는 드라마틱한 <금강전도>를 그림.
▪ 70대가 되면 복잡함을 버리고 이미지를 극대화하는 미니멀리즘적인 화법을 구사함.
◦ 보덕굴(普德窟): 진주담 바로 옆에 있으며, 7.2m 바지랑대 위에 지어진 드라마틱한 정자.
▪ 자연의 화려함에 맞서 지지 않으려는 심리로 지어졌으며, 한옥 지붕 네 가지(눈썹, 팔작, 우진각, 맞배)를 모두 사용함.
◦ 쌍 마애불(雙 磨崖佛): 금강산 계곡에 높이 15m의 고려시대 말의 좌상 마애불이 있음.
▪ 앉은 키 15m는 입상 30m와 같은 스케일 감을 주며, 남한 교과서에는 실리지 못했었음.
◦ 금강송(金剛松): 백두대간 금강산 지역에만 자라며 높이 25m까지 곧게 뻗음.
▪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의 소나무로, 눈에 부러지지 않기 위해 위로 솟고 가지를 낮게 뻗는 특징이 있음 (춘양목).
▪ 6.25 전쟁 격전지였기 때문에 유탄 파편으로 구멍이 많아 현재는 목재로서 가치가 없음.
◦ 구룡폭포(九龍瀑布):
▪ 단원 김홍도가 정조대왕의 명을 받아 45세 때 스케치풍으로 그렸고, 55세 때는 먹을 이용해 울림이 강한 그림을 그림.
VI. 백두산 및 국경선에 대한 고찰
• 김정호 이전의 지도: 고산자 김정호 등장 100년 전, 정상기(鄭祥基)가 금강산을 거의 지금과 같이 볼 수 있는 한국 지도를 그렸음.
• 백두산 가는 길 (함경도): 원산 명사십리, 함흥(만세교), 삼수갑산을 지나 백두산으로 감.
• 함흥 본궁 노송: 겸재 정선이 태조 이성계의 옛 집인 함흥 본궁의 담장 속 노송을 그린 아름다운 그림이 있음.
• 북관대첩비(北關大捷碑):
◦ 정문부 장군의 승전비로, 야스쿠니 신사에 있다가 남한이 찾아 레플리카를 경복궁에 두고 원본을 북한에 넘겨줌.
◦ 북한은 문화재는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들어, 평양이 아닌 원래 자리인 길주에 세웠음.
• 백두산 등정: 삼지연 공항(해발 1500m)에 착륙하여 2750m의 천지까지 45km를 이동함.
◦ 소나무, 가문비나무가 사라지고 감자밭과 들꽃이 나타남.
◦ 백두산 방문 당시 먹구름이 끼고 비가 와서 오히려 드라마틱한 풍경을 연출함.
• 압록강과 국경:
◦ 압록강 철교(단교)가 끊어진 모습이 보이며, 과거 단둥에서 토문까지 15일간 국경선 답사를 했음.
◦ 압록강은 조중 협정상 땅에 발을 대지 않는 한 월경이 아니므로 배를 타고 자유롭게 오갈 수 있음.
◦ 신경림 시인의 시: 신경림 시인의 '강은 가르지 않고 막지 않는다'는 시를 인용하며, 강이 분단의 아픔을 씻어내고 평화롭게 사는 것을 보여주는 장소라고 언급함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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